<편집국장 칼럼>손흥민 신드롬과 미주 한인사회의 정체성
- biznewsusa
- 8월 22일
- 3분 분량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선수생활을 접고 최근 미국 프로축구리그(MLS) LAFC에 둥지를 튼 손흥민.
그가 경기에서 맹활약을 펼칠 때마다 미주 한인사회는 들썩인다. SNS에는 "우리 손흥민"이라는 표현과 함께 수많은 찬사가 쏟아지고, 한인 커뮤니티 게시판은 그의 활약상으로 도배된다. 심지어 평소 축구에 관심 없던 이들까지 갑자기 축구 전문가가 되어 열띤 토론을 벌인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일각에서는 "과잉 열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선수의 성과에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마치 우리 자신의 성취인 양 받아들이는 것이 건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비판이 정당한가? 아니면 이 열광 속에 미주 한인들의 더 깊은 심리와 욕구가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손흥민에 대한 미주 한인들의 열광을 단순한 "대리만족"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현상이 너무 복합적이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같은 민족 출신의 성공한 인물에 대한 자부심이 크게 작용한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훨씬 복잡하고 절실한 감정들이 얽혀있다.
미주 한인사회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본국과의 물리적·심리적 거리감, 주류사회에서의 소수자적 지위, 세대 간의 문화적 격차 등 다층적인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1세대는 향수와 그리움으로, 2·3세대는 뿌리에 대한 궁금증과 자긍심에 대한 갈증으로 각각 다른 방식의 정체성 혼란을 경험한다.
이런 상황에서 손흥민은 매우 특별한 존재다. 그는 단순히 "한국인 선수"가 아니라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인정받는 한국인"의 상징이다. 영어로 인터뷰를 하며, 동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도 여전히 한국적 정서를 잃지 않는 모습은 미주 한인들에게 일종의 "이상적 모델"로 받아들여진다.
미주한인들의 손흥민 열광에는 "인정받고 싶다"는 집단적 욕구가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 특히 아시아계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이 여전히 강한 미국 사회에서 손흥민의 성공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증명처럼 여겨진다.
오랫동안 서구 사회에서 아시아인들은 "모범적이지만 눈에 띄지 않는" 존재로 인식되어왔다. 공부는 잘하지만 리더십은 부족하고, 성실하지만 창의성은 떨어진다는 식의 편견 말이다.
특히 스포츠 영역에서는 더욱 그랬다. 체격적 한계, 개인주의 부족, 승부욕 부족 등의 이유로 아시아인들이 서구의 주요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어렵다는 것이 정설처럼 여겨졌다.
그런 상황에서 손흥민의 등장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그는 단순히 아시아인으로서는 뛰어나다는 수준을 넘어, 전 세계 어느 선수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실력을 보여줬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플레이 스타일이다. 거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결정적 순간에 흔들림 없는 멘탈을 보여주며, 팀의 핵심 선수로서 리더십까지 발휘한다.
손흥민 현상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문화적 자긍심의 회복이다. 그는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가치와 정서를 잃지 않는다. 부모님에 대한 효도, 겸손한 태도, 팀워크를 중시하는 모습 등은 전형적인 한국적 미덕들이다.
이런 모습은 미주 한인들에게 "우리 문화도 충분히 경쟁력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서구 문화에 완전히 동화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기존의 통념을 깨뜨리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도 글로벌 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2·3세 한인들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부모 세대의 문화를 "낡은 것", "성공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여기기 쉬운 상황에서, 손흥민은 그런 문화적 유산이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물론 이런 열광에는 부작용도 있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개인의 성취를 민족 전체의 성취로 과도하게 확대 해석하는 경향이다. 손흥민이 잘하면 "한국인이 우수하다"고 자랑하지만, 반대의 경우 과도한 실망이나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한 개인에게 지나친 기대와 압박을 가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손흥민은 축구선수일 뿐인데 마치 한인사회 전체의 대표자처럼 여겨지며 그에 걸맞은 완벽함을 요구받는다. 이는 본인에게도, 건전한 응원 문화 형성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이런 "스타 의존적" 자긍심은 자칫 수동적인 태도로 이어질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통해서만 자부심을 느끼고, 나 자신의 노력과 성취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손흥민에 대한 관심과 응원 자체를 중단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열광의 강도가 아니라 그 방향성이다.
첫째, 손흥민의 성공을 "우리의 성공"으로 여기되 그것이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이유"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의 성공에 만족하며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각자의 영역에서 저런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자극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둘째, 개인적 성취와 집단적 정체성을 적절히 분리해야 한다. 손흥민은 훌륭한 축구선수이지만, 그의 성공이나 실패가 한인 전체의 가치를 증명하거나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를 응원하되, 그 응원이 건전한 선을 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셋째, 다양한 롤모델의 발굴과 응원이 필요하다. 손흥민 한 명에게만 집중하기보다는, 각 분야에서 묵묵히 성과를 내고 있는 다양한 한인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위험 분산의 효과뿐만 아니라, 더 건전하고 다원적인 커뮤니티 문화 형성에도 도움이 된다.
손흥민에 대한 미주 한인들의 열광은 결코 비합리적이거나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 안에는 정체성에 대한 갈증, 인정에 대한 욕구, 문화적 자긍심 회복에 대한 바람 등 매우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감정들이 담겨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감정을 어떻게 건전하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승화시키느냐는 것이다.
손흥민의 성공을 발판 삼아 우리 자신의 꿈과 목표를 더 크게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더 치열하게 노력하며, 다음 세대에게는 더 많은 기회와 가능성을 물려줄 수 있다면, 그 열광은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결국 우리가 손흥민에게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골 결정력이나 개인 기량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경쟁하는 그 자세일 것이다.
<곽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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