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칼럼]명문대 못간다고 죽나? 사회에 던지는 불편한 질문
사회에서 ‘명문대’는 일종의 신앙처럼 취급된다. 고교생의 하루는 명문대 입학 가능성을 기준으로 평가되고, 부모의 경제력은 사교육 투자액으로 환산되며, 심지어 한 사람의 잠재력마저 대학 이름으로 재단된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명문대 못 간다고 정말 죽나? 결론부터 말하면, 죽지 않는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죽을 것처럼 느끼는 이유는,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대학 간판=인생 성적표’라는 허상을 믿어왔기 때문이다. 명문대 신화는 능력주의의 탈을 쓴 구조적 편향이다. 좋은 대학 → 좋은 직장 → 안정된 삶이라는 공식은 한때 유효했지만, 지금은 이미 균열이 생겼다. 대기업 채용은 축소되고, 스타트업과 프리랜서 시장은 확대되고, 기술 변화 속도는 대학 간판보다 포트폴리오를 더 중요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여전히 ‘간판’에 집착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간판은 평가를 쉽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사람을 직접 보고 판단하는 건 어렵지만 대학 이름은 빠르고 편하다. 편리함이 편견을 낳고, 편견이 구조를 굳힌다. 사실 명문대 출신보다 비명문대 출신이 훨씬 많다. 그런데도 우리는 성공한 비명문대 출신을 잘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회가 그들을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명문대 출신의 성공은 “역시 명문대”라는 서사를 강화한다. 비명문대 출신의 성공은 “예외적인 케이스”로 취급된다. 이런 프레임 속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명문대=성공 확률이 높은 길’이라고 믿게 된다. 하지만 확률이 높다는 말은 그 길이 유일하다는 뜻이 아니다. 명문대는 인생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지만, 목적지는 아니다. 대학은 도구일 뿐이고, 도구는 쓰는 사람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결국 중요한 건 어디서 시작했느냐가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느냐다. 명문대에 가지 못해 망하는 건 인생이 아니라 자존감이다. 그리고 자존감이 무너지면 선택지가 좁아지고, 좁아진 선택지는 삶을 더 힘들게 만든다. 명문대가 아니라서 불행한 게 아니다. 명문대가 아니면 불행하다고 믿게 만드는 사회가 문제다. 아니다. 죽는 건 명문대가 아니라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이다. 명문대는 하나의 길일 뿐이고, 길은 언제든 새로 만들 수 있다. 지금 사회가 그 사실을 잊고 있을 뿐이다. <곽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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